베스트 드라마 무료 다시 보기 : 여명의 눈동자





걸작이라는 말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걸작이라는 단어가 붙어 사용되는 드라마가 있다. 여명의 눈동자이다. 이 드라마는 재미를 넘어 감동을 준다. 출연자들의 연기가 놀랍고, 제작자들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드라마 주인공들의 인생을 반추하면 가슴이 저민다.


여명의 눈동자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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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명의 눈동자에 대해


여명의 눈동자는 MBC에서 1989년 10월부터 창사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36부작으로 기획하여 1991년 10월 7일부터 1992년 2월 6일까지 방영된 수목 드라마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하여 해방 이후의 혼란기를 거쳐 한국전쟁시기에까지 이르는 시대를 다룬 걸작 시대극이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주인공 3명의 일대기를 생생한 묘사와 성실한 시대 고증으로 다루었으며, “한국 드라마의 역사는 여명의 눈동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스케일이나 연출면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라 평가받는 불세출의 베스트 레전드 드라마이다.

방영 당시 시청률이나 임팩트는 물론 작품성 면에서도 역대급으로 손꼽히는 끝판왕급 베스트 레전드 드라마로 평가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리메이크 요청이 여러 번 있었지만 워낙 뛰어난 걸작이라는 부담감과 그 만큼의 연출과 연기를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도 힘들다는 의견으로 여명의 눈동자의 부활은 아직도 미루어지고 있다.


방영 당시 큰 화제가 됐던 채시라와 최재성의 철조망 키스신
방영 당시 큰 화제가 됐던 채시라와 최재성의 철조망 키스신


또한 이 작품은 제작과 방송의 완결까지 상상을 초월한 노력이 투자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방송 시작 전까지 1년 5개월의 긴 사전 제작 기간을 가졌지만, 방송 시작 후에도 촬영을 완전히 끝 맺지 못하였고 마지막 회(제36부) 방송일 하루 전날인 1992년 2월 5일에서야 마지막 장면인 최대치와 윤여옥의 최후 장면을 촬영하고 방송 시작 10분 전에 편집 작업이 마무리되어 방송하므로 2년 4개월 간의 제작·촬영 일정을 끝 맺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노력들이 합하여 당시 수목드라마 임에도 시청률이 50%를 넘어갈 정도로 빅 히트를 친 인기 드라마가 되었다.





2. 여명의 눈동자의 인기와 평가


1) 평균 시청률 44.3%, 편당 최고 시청률 58.4%를 기록하며 역대 드라마 평균 시청률 9위에 올랐다.

2) 인기에 버금가게 이 드라마의 출연자들과 제작진에게는 아래와 같은 엄청난 상복도 주어졌다.

• 1991년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 최재성
• 1991년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 – 채시라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연기상 – 최재성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연기상 – 채시라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연출상 – 김종학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기술상(촬영) – 조수현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인기상 – 박상원
• 1992년 제19회 한국방송대상 드라마TV부문 최우수 작품상
• 1992년 제19회 한국방송대상 TV부문 프로듀서상 – 김종학
• 1992년 제19회 한국방송대상 TV부문 미술상 – 윤상준

3)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는 방송가에서는 당시 한국 TV 드라마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는 드라마 한편을 위해 2년 여에 걸친 장기 사전 제작을 시도했고, 등장인물의 숫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150명, 필리핀 40명, 중국 90여 명에 엑스트라 규모도 국내 2만 명, 중국인 5000명, 필리핀인 2000명 등이 참여해 사상 최대 등장인물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제작 비용도 당시로서는 막대하여 36편 시리즈 제작에 약 40여 억 원이 들어가 당시 제작 환경에서 보면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돈을 썼다 칭하기도 했다.

엄청난 물량 공세는 물론 영상미에서도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혔다. 스펙터클한 화면, 스피디한 진행, 다양한 카메라 기법 등의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 안방에서 보는 영화 같다는 평이 많았다. 이로서 당시 비슷한 소재와 느린 전개로 일관했던 드라마 풍토를 완전히 탈피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 그 외에도 드라마 제작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동시 녹음과 후시 녹음을 병행한 것,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교 상태에 있었던 중국에서 해외 촬영을 하므로 극의 완성도를 높인 것, 당시로서는 언급되기 어려웠던 위안부 문제, 731부대의 생체 실험 문제, 제주 4·3 항쟁 등을 언급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논해졌다.

5) 또한 OST 음반이 50만 장 넘게 팔리는 기현상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드라마 중에서 OST 음반이 따로 발매돼서 몇십 만장씩 팔린 최초 사례라고 한다. 보통 드라마가 빅 히트를 쳐서 드라마의 주제가와 가수가 유명세를 타는 경우는 있었지만 작곡가가 유명해진 일은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여명의 눈동자 OST 보기





3. 여명의 눈동자 다시 보기


여명의 눈동자 원본은 아날로그 베타캠 시절에 제작된 것이다. 만약에 미국 드라마처럼 35mm 필름으로 촬영되었다면 새롭게 HD 리마스터링이 가능하지만, 이 드라마는 SD급 DigiBta도 아니기 때문에 리마스터링이 불가능하다. 지금 공개되는 동영상의 화질은 디지베타 도입 이후에, 아날로그 원본을 디지털로 복사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화면비 역시 디지베타 도입 이후의 16:9 화면비율이 아니라 아날로그 베타캠 4:3 화면비율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화질 동영상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시청에 불편이 있다.

또한 33회의 온전한 동영상은 찾을 길이 업어 다른 회차들과 달리 유튜브 동영상을 연결되었다. 유뷰브 동영상은 많은 조각으로 나누어져 다소 시청이 불편할 수 있지만 감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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